\ [ 20세기 세계 3대 미녀] Elizabeth Taylor, Monica Bellucci, olivia husseyolivia hu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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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세계 3대 미녀] Elizabeth Taylor, Monica Bellucci, olivia husseyolivia hussey

by Incheon Punguna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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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천 풍운아입니다.


아무래도, 시대와 지역 및 가치관변화에 따라  다르다곤 해도, 미녀에 기준이 외형을 기준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면에 대한 모습은 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아래는 외형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미녀를 판별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나열해 보았으며, 개인적인 소견으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 대칭적인 얼굴 및 뚜렷한 이목굽비 /밝고 화사한 피부
  •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 날씬한 몸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미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큰 눈을 가진 미녀를 선호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작은 눈을 가진 미녀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날씬한 몸매를 가진 미녀를 선호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통통한 몸매를 가진 미녀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풍만한 몸매가 미의 기준으로 여겨졌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창백한 피부가 미의 기준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에는 날씬한 몸매와 건강한 피부가 미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이유는 사회의 변화와 문화적 영향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산업화 시대에는 건강한 노동력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날씬한 몸매보다는 건강한 몸매가 미의 기준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에는 개인의 개성과 표현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미의 기준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결국, 미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취향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해서 세기별 미인에 대한 기준을 대표적인 시대적 미인으로 선정하여 정리하는 글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20세기 3대 미녀 :

엘리자베스 테일러

올리비아 핫세

모니타 벨루치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배우입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성인기까지 원숙한 연기력과 관능적인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보랏빛 눈동자는 그녀를 상징하는 특색으로 여겨졌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44년 영화 "국가대표"로 데뷔한 후, "젊은이의 양지", "클레오파트라", "프렌치 커넥션", "테스"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매혹적인 외모와 깊은 연기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세기의 여배우"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8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으로는 콘래드 힐튼 2세, 마이클 와일딩, 몽고메리 클리프트, 리처드 버턴, 에디 피셔, 존 워너, 래리 포튼스키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11년 3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폐부종으로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6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젊은이의 양지")
  • 196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클레오파트라")
  • 1968년 BAFTA 여우주연상 ("클레오파트라")
  • 1970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클레오파트라")
  • 1983년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 ("테스")
  • 2000년 아카데미 공로상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자선 단체를 설립하고, 에이즈 퇴치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1992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는 1951년 3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배우입니다.
1967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한 후, "조지 왕의 광기", "로드 앤 티처", "나인 하프 위크스", "로라의 눈"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맑은 눈빛으로 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올리비아 핫세는 1975년 영화 "조지 왕의 광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1985년 영화 "나인 하프 위크스"로 섹스 심벌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올리비아 핫세는 1980년대 이후에도 "로라의 눈", "레퀴엠 포 A 드림", "악마의 키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도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리비아 핫세의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75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조지 왕의 광기")
  • 1976년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 ("조지 왕의 광기")
  • 1977년 BAFTA 여우조연상 ("조지 왕의 광기")
  • 1985년 BAFTA 여우주연상 ("나인 하프 위크스")
  • 1986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나인 하프 위크스")

올리비아 핫세는 1971년부터 1976년까지 배우 데이비드 헤이우드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1976년 이혼했습니다. 이후,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배우 잭 니콜슨과,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배우 리처드 버턴과,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배우 맨디 파틴킨과,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배우 데이비드 갤러거와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했습니다.
현재는 독신입니다.
 

모니타 벨루치

 

모니카 벨루치는 1964년 9월 30일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키타치오(현재의 치타디카스텔로)에서 태어난 배우이자 모델입니다. 1977년 13세의 나이에 지역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했으며, 1985년 영화 "인페르노"로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미녀와 야수", "원초적 본능", "라퓨타", "007 007 뷰투어 어 라이프"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녀는 압도적인 미모와 우아한 자태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방",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007 스펙터"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도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니카 벨루치의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96년 세자르상 신인여우상 후보
  • 2004년 에마뉘엘 베아르 상
  • 2005년 로마 영화제 여우주연상
  • 2014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어떠세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본인들 생각하시던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다음은 20세기 세계 미남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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